기쁨과 평화 넘치는...

[성당순례] 의정부교구 법원리성당 갈곡리공소...

지요안 2010. 8. 8. 15:31

 

2010.8.7 한탄강관광지를 출발한지 한 시간여인 11:50분경,
파주시 법원읍 갈곡리소재의 유서 깊은 갈곡리공소(公所)에 도착하였다.
1955년에 외국인 군종신부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하는데
올해로 만 55년이 넘는 아름다운 성전이다.
마침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조용한 시골마을에 울려 퍼지자
우린 이내 걸음을 멈추고 삼종기도를 드렸다.

 

성전 맞은편에 벽돌로 잘 지어진 칠울강당엔 사제관이 있었고
직사각형 돌로 지어진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성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단아한 성전으로 들어가 보니 양쪽으로 기둥이 있는 맨바닥의 성전으로
세 명의 할머니와 종치기로 보이는 남자분 등 4명이 앉아 있었다.
12시 종이 울리면 성전에 모여 묵주기도를 드린다고 하면서
이 마을엔 약 50여명의 신도가 있다고 종지기 아저씨가 전한다.

 

참고로, 옛부터 칡이 많아 갈곡(葛谷), 우리말로 '칡의마을, 칠울'이라 불렀다는데
박해를 피하여 모여든 교우들이 교우촌을 형성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간직하였던 유서 깊은 곳으로 이 마을에서 많은 성직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가톨릭성가 68번, 기쁨과 평화 넘치는 곳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 의정부에서 32, 32-1, 불광동에서 31번 버스자가용 : 법원읍에서 동쪽 56번 도로로 갈곡교를 지나 은현, 광적 방면으로 약 15분 정도 가면 오른편에 위치.


용어해설 : 공소(公所)

 

본당(本堂)의 성당(聖堂)보다 작은 규모의 예배소가 있는 곳으로, 본당에 소속은 되어 있으나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소규모의 작은 교회를 말한다.

이곳은 미사가 집전되지 않으므로 본당 신부의 위임을 받은 평신자(공소 회장, 선교사)가 공소 예절과 신심 행사를 주관한다.한국 교회에서는 사제가 정규적으로 1년에 두 번 이상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하고 정기적으로 판공 성사를 주도록 하고 있다.
펌글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의정부에서 서북쪽으로 20km, 문산에서 동쪽으로 12km 지점에 있는 갈곡리(葛谷里) 공소는 옛날에는 칡이 많던 곳이었는지 칡의 계곡(갈곡 : 葛谷)으로 불리었고 순수 우리 말로 칡울(칡의 마을)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원래는 '칠울 공소'라고 불렸다.

이 마을이야말로 파주 지방 천주교 신앙의 요람이다.이 마을은 6.25 전만 해도 수풀과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험한 지대였고 커다란 고개가 동쪽에 있는데 그 고개를 넘으려면 20여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하여 "스르내미"(스물 넘어) 고개라 한다.이렇게 험한 첩첩 산중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10년 전이다.홍천과 인근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처음에는 칠울에서 남동쪽 6km 떨어져 있는 "우골"(현 우고리, 우묵하게 들어간 골짜기)이라는 곳에 정착하여 살다가 5년째 되던 해인 1896년 김근배 바오로, 김연배 방지거, 박 베드로 가족이 이곳 칠울로 이주 정착하게 된다.이로써 구한말 갈곡리와 신암리(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일대에 박해를 피해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옹기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던 교우촌이 형성되었다.이곳 칠울에 정착하게 된 동기는 칠울과 우고리 고령 등 인근에 옹기그릇을 만드는 점토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갈곡리 공소의 발자취1896년 김 바오로, 김 방지거, 박 베드로 가족이, 홍천과 인근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이곳 칠울로 이주 정착함. 이들 가족들은 옹기를 만드는 옹기쟁이와 옹기를 팔러 다니는 도부꾼들이었고 이곳 칠울에 정착하게 된 동기는 칠울과 우고리 고령 등 인근에 옹기그릇을 만드는 점토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짐.1898년 신자 수 65명으로 약현본당 칠울공소가 설립되고 김근배 바오로가 초대 공소회장에 선임됨.19002년 사이에 신자수가 곱절이 넘는 145명으로 늘어남.1902년 송도(개성)본당이 새로 설립되어 약현 본당에서 송도본당 공소로 이관됨.1909-1910년경 칠울공소가 활성화되어 신자수가 246명으로 증가함. 이때 송도 본당신부님은 르 장드르 신부님이셨음.1912313일과 191532일 두 차례, 송도 본당 신부님이신 르 장드르 신부님이 서울 주교관 방문차 공소를 다녀가심.19181211-14일까지 34일 동안 교구장이신 뮈텔 주교님께서 공소를 방문하시어 두 사람에게 세례를, 일곱 사람에게 보례를, 한명에게 유아세례를 주심.1919-1920년 신자 수가 186명으로 조금 감소함. 이때 르 장드르 신부님께서 프랑스로 귀국 하시고 3년 전 19179월에 사제 서품을 받으신 안학만 신부님께서 새로 부임하심.1925년 신암리 본당 신설로 인하여 칠울공소는 신암리 본당 공소가 됨.1934년 신자수가 급격히 줄어든 신암리 본당이 공소로 환원, 덕정리 본당이 신설되어 칠울공소는 1947년까지 13년 동안 덕정리 본당 공소가 됨.1947년 의정부 본당이 신설되어 1963년 까지 16년 동안 의정부 본당 공소가 됨.(초대 이계광 신부님)1953년 칠울공소가 설립된지 55년만에 최초의 공소출신 최창성 시메온 신학사가 사제 서품을 받음.1954422일 지금은 옛 모습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보존되어온 공소강당이 준공 됨.1954년 공소출신 두 번째 사제가 탄생함. 그동안 부산교구에서 활동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신 김남수 루가 신부님께서 사제서품을 받으심.195519일 군종 신부님이셨던 에드워드 마 신부님의 도움으로 공소 성당이 건립되어 노기남 대주교님의 주례로 축성 봉헌됨.1963년 공소출신 세 번째 사제가 탄생. 현재 주교회의 의장이시며 광주 대교구장으로 계시는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심.196374일 법원리 본당 신설과 함께 의정부 본당에서 법원리 본당 관할 공소가 됨.(초대 김병기 다두 신부님)1970년 공소출신 네 번째 사제가 탄생함. 현재 여의도 본당 주임 신부님으로 계신 김충수 보니파시오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심. 1973년 공소출신 다섯 번째 사제가 탄생함. 서울대교구 9지구장으로 계셨던 최준웅 바르나바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심.1976년 공소출신 여섯번째 사제가 탄생함. 현재 가톨릭 중앙의료원장으로 재임하고 계시는 최영식 마티아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심.1976년 공소출신 일곱 번째 사제가 탄생함. 조명호 다두 신학사가 원주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심.1983년 서울대교구 성체대회 및 성체거동이 이곳 칠울공소에서 거행됨.199022일 공소출신 여덟 번째 사제가 탄생함.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신 현재 인천 서운동 주임 신부님으로 계신 김영욱 요셉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심.1994년 가톨릭대학 초대 총장으로 재임하시던 최창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영광스런 주교 서품을 받으시고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심. 1998년 노후된 공소 성당이 지붕과 내부를 수리하여 새롭게 단장함.1999년 최창무 안드레아 주교님께서 대주교에 임명되시어 공소 방문 후 광주교구로 가시며 이듬해에 광주 대교구장에 착좌 하심.20025월 성령강림 주일날 고향 칠울을 떠난 이들이 서울대공원에 모여 그동안 고향과 서로에게 무관심했음을 뉘우치며, 서로의 친교를 위하고 또한 고향을 보존하고 발전시키자는 취지와 함께 애향회가 발족, 최영식 마티아 신부님의 주례로 창립미사가 봉헌됨. 200475일 서울 대교구에서 의정부 교구가 분구 설립되고 이한택 요셉 주교님께서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 착좌하심.2005410일 이한택 요셉 교구장님을 모시고 공소 성당 건립 50주년 기념미사 및 사료 전시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함.


칠울 공소 출신 수도자 근황현재 갈멜수도원에는 87세이신 최 성삼의 마리 이사벨 수녀님과 83세이신 최 미카엘라 수녀님 두 분 노령의 수녀님이 생존해 계시다. 그 외 최 알렉산델 수사님은 혜화동 보나벤투라 수도원에서, 김 에스텔 수녀님께서는 횡성 안나의 집에서, 김 마리폴 수녀님은 춘천 주교좌 죽림동 성당에서, 최 라파엘라 수녀님은 제주 성 글라라 수도원에서, 전 아녜스 수녀님은 수유1동 성당에서 활동하고 계시다(2005.9).

 

▲사제관이 있는 칠울강당...

▲칠울강당 머릿돌...

▲좌측이 사제관...

▲성전 앞에 세워진 사은비...

▲성전 뒷부분...

▲묵주기도를 바치는 신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