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어물처자와 건어물처자가 자주 간다는 조용한 바닷가로 갔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 같다. 대용량바테리로 물을 끓여 보이차를 만들었다. 컵이 하나밖에 없어서 다시 차를 돌려 편의점으로 가려고 했더니 건어물처자가 시부적시부적 가방에서 컵을 꺼낸다. 이럴 줄 알았다면서 준비해 왔다고 한다. 대단히 치밀하고 정교한 처자다. 하이힐을 신었나 보니 아주 굽이 없는 신발을 신고 왔다. 짱이다. 조용하나 치밀하고 큰 여인. 찻물이 끓느라고 차창에 김이 서렸다. 창문을 내렸다 닫으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조용한 말이 폭풍우를 불러온다는 말이 있어요. 바닷가에서 차를 마시는 이 시간이 그런 것 같아요. 조용히 심장이 뛰네요. 폭풍우가 몰려오려는지. ㅎ
-시인은 말을 잘하는 사람인가요?
-아뇨, 그런 시인은 가짜 시인이겠지요. 말보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 생각을 고요히 하는 사람, 생각을 깊이 하는 사람, 그게 좋은 시인이겠지요. 저는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시끄럽게 해요. 좋은 시인은 아니라요.
-근데 조용한 말이 폭풍우를 불러온다는 말 너무 멋있어요.
-제 말이 아니라 니체라는 철학자가 한 말이라요. 그냥 괜히 좀 멋있게 보이고 싶고, 어디 영화에서 본 건 있어가지고 남의 말로 폼잡아 봤어요. ㅎㅎ 고등학교 때 여학생 만나 빵집에서 하던 수작이지요 뭐.
-호호호 폼나요. 시인님, 바람둥이 맞지요?
-아이고, 바람둥이 아니라요.
-호호호 바람둥이가 뭐 나쁜 건가요, 사람 마음에 바람을 불게 하면 그게 바람둥이지요.
-하하하하, 제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건어물처자께서 말씀을 잘 하시네요.
-건어물처자요?
-그냥 제가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요. 좀 안 좋나요?
-건어물처자가 뭐예요, 듣기 싫어요. 00씨,라고 불러주세요.
-건어물처자가 좋은데...
-저는 싫어요. 건어물을 맨날 만지고 팔고 하니 듣기 싫어요. 지루해요.
-죄송요. 그럼 00씨라고 부를게요. 00씨.
-호호호, 제가 싫다니까 얼굴이 갑자기 굳어버리시네요. 호호호.
-아, 제 얼굴이 굳었나요? 아이고... 쑥스... 근데, 00씨, 여기 자주 와요?
-쉬는 날은 거의 매일 와요. 여기서 보면 정말 시인님이 말한 그런 게 느껴져요. 조용한 말이 폭풍우를 불러온다는 말. 조용히 오던 파도가 해안에 와서 해안을 치거든요. 조용조용한 시인님의 말이 제게는 파도처럼 들려요. 파도는 멀리서 조용히 일어나 천천히 와요. 해안에 와서 큰 소리를 내며 마음을 쳐요. 눈을 가늘게 뜨고 저기 수평선을 봐 보세요.
-(나는 건어물처자의 말대로 눈을 가늘게 뜨고 수평선을 본다)
-아지랑이처럼 장어처럼 고요히 넘실대는 게 보이지요?
-네, 정말 뭐가 움직여요. 파도겠지요?
-그게 해안으로 오면서 조금씩 자라요. 여기까지 와서는 호랑이로 변해요. 저 갯바위들이 없으면 여기도 다 바다가 되었을 거예요. 여기서 보면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는 거 같아요. 아주 가끔 큰 돌이 저기 절벽에서 떨어져 해안에 놓여있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은 못 보겠지만, 자주 오는 저는 그게 보여요. 마치 새로운 해안이 만들어진 것 같거든요. 쉬는 날에 저는 꼭 이곳에 와서 종일 바다를 보다가 돌아가요.
-이곳으로는 정말 사람들이 안 오네요. 조용하고 좋아요. 바람도 불지 않는데 파도가 크게 오네요.
-그런 파도를 너울이라고 해요. 바람이 불 때 이는 물결은 풍랑이고요. 멀리 어디서 큰 바람이 불면 풍랑이 일고 그게 바다 밑으로 조용히 오다가 해안에 이르러 크게 일어나 너울이 되는 거거든요. 너울을 조심해야 해요. 조용히 와서 크게 치거든요. 해안에 사니까 일기예보에 민감해져요. 매일 매시간 예보를 들여다보고 있어요.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생각들이 세계를 운전하는군요.
-네? 호호호 또 멋있는 말씀 하시네요.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생각들이 세계를 운전한다는 건 시인님 말씀이지요?
-ㅋㅋㅋ 그 말도 니체가 한 말이라요. 니체가 한 말 다 해드릴까요?
-네.
-가장 조용한 말들이 폭풍우를 불러온다.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생각들이 세계를 운전한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올 수밖에 없는 자의 그림자로써 가야만 한다. 그러면 그대는 명령할 것이고 명령하면서 선도할 것이다.
-우와~ 뭔 말인지 알 듯 말 듯 참 좋네요. 책에 나오는 건가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 있어요. 거기 나오는 말이라요. 니체가 쓴 책인데요. 니체는 초인을 기다리던 사람이라요. 초인은 초월자, 넘어선 자, 뭐 그런 뜻을 가진 건데요. 쉽게 말하면 초인은 바람둥이지요 뭐.
-호호호호, 시인님 유머 있고 재밌어요. 어제 사실 인터넷으로 시인님 시 엄청 많이 찾아서 읽어봤어요. 파도에 대해 쓴 시도 있던데요. 그 시 쓸 때 애인이랑 같이 파도를 보고 쓴 건가요? 바닷가, 눈 감으면 내 왼쪽 귀에서 그대 오른쪽 귀로 파도가 지나갔다는 시요.
-아이고, 시를 외우셨어요?
-외우지는 않았는데 오늘 시인님과 바다에 올 생각하니 그 시가 딱 다가왔어요. 어제 어성호 횟집에서 막 큰소리치시던데 왜 그러셨어요. 제가 맥주 사가지고 잠깐 들렀을 때 이재명 윤석열 가지고 싸우셨잖아요?
-싸운 건 아니고요. 그냥 괜히 소리가 커진 거라요. 이재명에 대해 말하다가 그랬어요.
-이재명 좋아해요?
-좋아한다기보다 이재명을 찍어야 할 것 같아서요.
-어떤 측면이 좋은데요?
-파도를 보면 뒤에 오는 파도가 앞의 파도를 밀면서 해안에 도달하잖아요. 첫 파도 두 번째 파도 세 번째 파도가 점점 커지는 이유도 뒤의 파도가 밀어주기 때문인 것 같고요.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그런 경험들 그런 파도들이 지금의 이재명을 밀고 온 것이고요. 윤석열의 공약은 갑자기 만든 것이지만 이재명의 공약은 두 번 세 번의 파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이재명의 공약은 대가리에서 허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정치적 실천과 구체적 성과와 극복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거든요.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이 나라를 구할 사람으로 보였어요. 이재명의 대선 공약은 이재명의 몸과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라요. 이재명이 공약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공약이 이재명을 기억할 겁니다. 근데 요즘 지지율이 좀 답보상태라 지지자들이 초조해 해요.
-시인님?
-네?
-저는 누구 찍을 것 같아요?
-윤석열인가요?
-시인님 찍고 싶어요.
-키키키키키키, 왜 그래요, 농담하지 마시고요.
-시인님은 순진하시네요. 제가 시인님 찍고 싶다고 하면 그게 이재명 찍고 싶다는 말이잖아요.
-아, 그렇게 되는군요. 아이고, 건어물처...아니 00씨는 정말 쎈스가 넘치십니다.
-근데요,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잘 안 오른다고 했잖아요. 이유가 뭐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뭐가 좀 문제가 생기면 나라를 차지한 권력에 대해 무조건 반감을 가지는 거 같아요. 국민들이 볼 때는 민주당이 기득권이거든요. 그것도 굉장한 기득권세력. 자기들이 잘했다고 할수록 기득권세력으로 보여요. 잘못했으니 반성한다고 하면 더 기득권세력으로 보이고요. 이래도 밉고 저래도 밉게 보여요. 잘하겠다고 해서 표 주니까 자기들 권리만 찾아먹은 걸로도 보였어요. 얄미운 거지요. 한번 얄밉게 보이면 한번 당해봐라 그런 심정이 들어요. 제 심정도 그렇고요.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판단이지만 판단이 굳어져 버려 무슨 말을 해도 잘 안 먹혀요. 그래서 윤석열한테 한번 당해봐라 그런 생각까기 하게 되더라고요. 옳지 못한 생각이지만 말예요.
-아, 그렇겠네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야당과 소소한 걸로 다투기보다 좋은 정책과 공약으로 밀고 나가야 하지만 그게 또 너무 당연한 거라서 감동이 없을 것 같고 말입니다.
-감동만 쫓아가는 것보다 시인님 말씀대로 식상하더라고 성심을 가지고 밀고 가야지 싶어요. 정치 얘기 하다보면 왜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각자 자기 삶에서 나온 판단일 텐데 그걸 존중해주면 될 텐데 말예요. 우리 동네 사람들도 아저씨들 모이면 그걸로 멘닐 싸워요.
-선거철이라서 그럴 거예요.
-정치얘기 하니까 머리 아프시지요? 시인님, 혹시 외우시는 시 있어요?
-누구 거요, 제가 쓴 시요?
-네, 하나만 읊어주세요.
-히히히히, 우리가 마치 3류 영화나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아요.
-머 어때요, 한 편만 읊어주세요.
-좀 쑥스럽지만 한 편 읊을게요. 좀 긴데요.
-괜찮아요. 긴 게 좋아요.
-오래된 상상, 연락도 잘 닿지 않는 낯선 소도시의 변두리로 가서
하루에 한 번씩 햇살이 들어온다는 좁은 골목 안, 아주 작은 셋방을 얻고 싶다.
아기처럼 말랑한 볼과 순한 이를 가진 여자,
칼국수를 끓여 호로록거리며 먹다가 배가 부르면 나에게 나머지를 미루는,
좀 앙큼하지만 엉덩이가 커서 잘 떠나지도 않는 여자를 얻어
어색하고 다정한 살림을 차리고 싶다.
10년 된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서 50cc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시를 쓰면
그런 곳에서는 바퀴벌레처럼 잘 죽지 않는 단단한 시가 나오겠지.
쌀벌레 같은 그리움이 꼬물거리며 쌀통에 가득 차고
사랑은 된장처럼 보글보글 끓겠지.
감기 걸렸다고 파국을 끓여주는 여자,
물걸레질로 방 습도를 맞추고 있는 여자의 엉덩이를 발로 툭, 건드려 장난을 치기도 하고
열이 나는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주며 웬 술을 그렇게 마시냐고 잔소리하는 여자 앞에
잘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기도 하다가 한 며칠 끙끙 앓고 난 뒤
창문 아래 골목길에 들어온 오후의 햇살처럼 일어나는 거다.
촌스럽게 볼 화장을 하고 시장에 가서 약장사의 말솜씨에 넋이 나가는 철부지 여자,
내 여자가 늦게 오는 밤에는 30촉 등을 켜놓고 기다림을 써내려 가는 거다.
순댓국집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얻어 듣고 와서
진지한 고민을 하다가 가르릉 가르릉 코를 골며 자는 여자,
그 소박한 슬픔 곁에서 밤잠을 설치며 시를 써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보내는 거다.
원고료가 오는 날은 근방에서 제일 맛있다는 순댓국집을 찾아가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여자에게 안주를 집어주며 인정있게 낮술을 하는 거다.
2차로 노래방에 가서 18번 달맞이꽃을 부르고 서울이 그리울 여자를 달래줘야지.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여자 몰래 하루쯤 집을 나와 머리띠를 붉게 묶고
집회장에 가서 선동시를 낭송할 수도 있겠지.
혼자 좀 빌빌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을 테지.
걱정이 되어 노루처럼 뚱그래진 눈으로 집 앞에 종일 서성이던 여자를 안고
동굴짐승처럼 서식지로 들어가 뜨겁게 뜨겁게 자다가
눈물 흘린 여자의 볼을 닦아주며 또 밤새 시를 쓰는 거다.
심장이 까맣게 말라 더 나올 게 없을 때까지 시를 쓰다가
해 넘긴 달력 뒷장에 계산을 시작한 여자의 서툰 가계부 속으로 들어가
바퀴벌레처럼 납작하게 말라 죽어서 흔적만으로 구구절절 묘비명을 대신하는 거다.
나 떠난 뒤 서럽게 울던 여자도 울다가 지쳐 시인이 되겠지.
멋들어지게 나를 욕하는 소리 저승에도 들릴 만큼 큰 시인이 되겠지.
그러면 우리는 이승 저승 서로를 목놓아 부르다가
바람으로 풀꽃으로 또 다른 세상에서 보고팠던 만큼 다정하게 피어나겠지.
-우와, 이렇게 긴 시를 다 외우셨어요. 눈물나요.
-아이고, 진짜 울어요?
-히히히 그냥 눈물이 쭉 흘렀어요. 시인님은 정말 바람둥이 맞아요. 사람들이 다 바람 들겠어요.
-시가 괜찮았나요?
-네. 정말, 시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요? 애인 없어요?
-잠깐만요, 핸폰이 없어서 컴으로 어젯밤에 카톡을 보니 난리가 났더라고요. 아무래도 한번 더 봐야겠어요. 잠시만요...
(계속)
※ 노트북을 켜서 건어물처자 핸폰과 연결하여 카톡을 보니 난리가 났다. 통화가 되지 않으니 어머니가 사방팔방 전화를 하고, 사람이 행방불명 됐다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를 치고 그러시는 모양이다. 김구가 작업실에 와보고 차가 없으니 어디 간 거라고 안심을 시켜드려도 안 된다고 아빠 어디 있냐고 100건의 문자가 와 있다. 얼른 답하고 건어물처자 핸폰 빌려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가 아이고 이노무새끼야, 하시며 갑자기 엉엉 우신다. 핸폰을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5일째 행불이었으니... 엄마도 페북을 하면 되는데... 오늘은 서울로 가야지 싶다. 건어물처자와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건어물처자는 그냥 건어물처자가 아니었다.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처럼 보였다. 니체를 말하면 니체를 바로 바다에 적용하여 응답하고, 시를 말하면 시를 바로 생활에 적용하여 응답하고, 짜라투스트라를 말하면 짜라투스트라를 바로 인생에 비유하여 응답하였다. 키가 크고 외모가 너무 뛰어나서 그게 짜증나지만, 그래도 건어물처자 만세~ ㅎ^^
▼류근 시인의 댓글(두 냥반의 티격태격 참 재미지다~ㅋ)
《이 냥반이 그림 팔아서 재미 좀 보더니 이젠 순 구라빨 웹소설까지 해먹을 기세네. 그래요, 뭐 어차피 시로는 류근 따라잡기 틀렸으니 뭐든 해봐야지요. 힘내요 ㅎ》
■김주대 시인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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