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굶어 죽으라는 거냐"…이젠 한 끼도 힘든 무료급식소
업데이트 2023.01.29 11:31
중앙일보
서울 영등포동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 총무 박경옥(64)씨는 지난달 급식소에서 일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설을 앞두고 방앗간에서 떡국용 떡을 직접 사왔다. 연말연시면 쏟아지던 가래떡 후원이 뚝 끊겨서다. 박씨는 “코로나19 전엔 보통 크리스마스와 신정, 구정마다 특식으로 떡국을 400~500인분씩 했다. 몇 번을 먹고도 충분히 남을 정도로 후원이 들어왔었는데, 올해엔 식사하시는 분이 300명 정도로 줄었는데도 (후원받은 떡으로는) 떡국을 한 번 끓이기에 부족했다”고 말했다. 떡 300인분을 사는 데엔 후원금 약 60만원이 들었다.
급식에 쓰던 김치도 기존엔 수입산을 사서 썼지만 최근 물가가 크게 올라 지인들에게 김치 기부를 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박씨는 “원래 연초면 냉장고가 꽉 차 있었는데, 요즘은 휑하다”며 “여유가 있으면 국에 고기도 얹어 끓여드리고, 고기반찬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1993년부터 운영돼 온 토마스의 집은 지금도 독거노인과 노숙인 등 약 600명에게 주 5일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2013년부터 밥값 명목으로 200원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무료급식소다.
고령층과 노숙인 등의 한 끼를 책임져 온 무료급식소들이 존폐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식품 물가가 치솟고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급식소 운영비는 계속 증가한 반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후원금은 급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무료급식소 전국 255곳이 운영을 종료했다. 순수 민간 기금으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소 현황은 별도로 집계도 되지 않는다.
26년 된 안양 노숙인 무료급식소도 ‘휘청’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서 26년째 노숙인 등에 무료 저녁 식사를 제공해 온 ‘유쾌한무료급식소’ 역시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운영비가 1년 전보다 약 30% 늘어나는 동안 후원자가 300여명에서 250여명으로 줄어든 데다가 급식소가 있는 땅도 재개발 대상이어서 오는 3월까지는 사무실을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맞물렸다. 유쾌한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유쾌한공동체’ 관계자는 “쌀은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오히려 반찬을 살 돈이 없다”며 “100명 정도이던 이용자는 경기 침체 여파로 지금은 160명까지 늘어나 운영비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래도 식사 퀄리티(질)를 떨어뜨릴 순 없어서 후원을 늘리기 위해 더 애를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대표적인 무료급식소인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원각사 무료급식소도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에 골머리를 앓는 건 마찬가지다. 고영배(53) 사회복지원각 사무국장은 “수입산 김치가 작년 1만 1000~2000원 하던 게 지금 1만 7000원 한다. 채소도 작년보다 20~30%씩은 오른 것 같다”며 “후원금이 줄진 않았지만, 하루에 10만원씩 해서 한 달에 300만원 정도 (식비가) 올랐다”고 말했다.
양파, 고등어부터 고추장까지…천정부지 뛰는 식품 물가

물가는 계속 오르는 추세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물가지수는 110.69으로 1년 전보다 5.7%p 증가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7일 소매가 기준 양파(1kg)는 2713원으로 1년 전보다 34.9%, 염장 고등어(1마리)는 2190원으로 18.8% 오르는 등 채소와 수산물 가격이 특히 크게 올랐다. 가공식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기간 국내 모 고추장 제품(1kg)은 가격이 1만4743원에서 1만6848원으로 14.3% 올랐고, 한 국내 된장 제품(1kg)은 6535원에서 7765원으로 상승했다.
문을 닫는 무료급식소들이 늘면서 노인들 사이에선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유쾌한무료급식소 앞에서 만난 김용순(72)씨는 “(급식소가 없어지면) 굶어 죽으라는 거다. 달리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동의 한 아침 무료급식소 앞에서 만난 70대 박모 씨는 “어떤 급식소는 원래 밥을 먹고 빵이나 사과 같은 간식 대여섯개를 줬는데, 어느 날부터 ‘후원금이 안 들어온다’며 간식을 줄였다”며 “이해하지만 배고픈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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