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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충주 탄금대(彈琴臺)...

지요안 2013. 4. 28. 13:34

 

2013.4.25 목요일 오후, 율리아노-요셉씨와 셋이서 나선 번개여행의 첫 기착지는

충주의 '가야금을 타던 터', 즉 탄금대(彈琴臺)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가야사람 우륵이 신라로 귀화한 후 이곳에 자리를 잡고 가야금을 연주했는데

그 아름다운 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발아래로 펼쳐진 강과 어우러진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부여 낙화암을 연상케 하였고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작은 섬이 또한 여의도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배수진을 치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왜군에 패하고 퇴로가 막힌 신립장군이 투신한 곳으로도 유명한 역사적인 장소다.

또한, 탄금대는 자연환경을 살린 공원으로 숲길이 조성되어있어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외지인들도 꾸준히 찾는 곳이라는데 가족단위로 나들이를 해볼 만한 장소였다.

 

쾌적한 탄금대에서 한 시간여를 산책한 후 다음 목적지인 제천 박달재로 가다가

어렵게 찾아간 동량면의 횟집에서 붕어회를 사가지고 17시가 넘어 펜션에 당도했다.

 

■두산백과 펌글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7월 9일 명승 제42호로 변경되었다.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야산인데, 기암절벽을 휘감아돌며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으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탄금대란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중 하나인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嘉悉王) 때의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살게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法知)·계고(階古)·만덕(萬德)을 뽑아 보내 악(樂)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아 풍치를 즐기며 커다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 칠곡리(지금의 칠금동), 금뇌리(지금의 금능리), 청금리(지금의 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지금까지 전한다.

 

탄금대는 또 임진왜란 때 무장 신립(申砬)이 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치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의 열두대라고 하는 절벽은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신립은 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곳에는 신립의 충의심을 기리는 탄금대비를 비롯하여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궁도장, 대흥사 등과 조각공원 및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충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