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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문경새재 마원성지, 진안리성지...

지요안 2012. 5. 15. 09:39


2012.5.13, 안동교구 문경성당 관할의 진안리, 마원성지 두 개의 성지순례.


행락인파가 몰리는 5월인지라 정체가 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서둘러

정07:00 정각에 서울을 출발하였으나 도로는 전혀 막힘없이 쾌적하였다.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진안리성지는 한국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신부님께서

왕성한 포교활동을 하시다가 과로로 인하여 갑자기 병을 얻어 선종한 곳이다.


동네의 작은 공원 정도의 크기에 빙 둘러 십자가의 길  14처가 세워져 있고

대형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것이 전부인 아주 조촐한 성지였다.

잘 조성된 타 성지와 비교하면 아주 초라하고 보잘 것 없게 느껴질 정도였으나

최양업신부님의 행적을 따라 묵상하며 30여분 둘러본 후 문경성당으로 향했다.


문경성당으로 가던 중 박정희대통령이 하숙하였다는 청운각을 잠시 둘러보고

문경성당에서 10:30분 미사 후 다시 10여분 거리에 있는 마원성지로 향했다.

마원성지는 칼레신부님을 도우다 순교하신 박상근(마티아)의 유해가 묻혀있는 성지로

진안리성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잘 조상된 성지였다.


언덕을 따라 시작되어 동산 전체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를 바치며

1시간여 순교자의 체취를 느끼며 둘러보고 12:30분경 성지를 나왔다.

이어 20여분 거리의 수옥폭포 아래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식사 후

5월의 자연 속에서 두 시간여 쉬다가 15시에 귀로에 올라 17시경 무사히 귀경.


가톨릭성가 453장, 푸르른시냇가    



진안리성지

문경시 문경읍 진안리 오리 터이다. 진안 성지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선종지이다. 최양업 신부는 1859년 말부터 1860까지는 경신박해를 맞아 경남 언양의 간월산 동굴에서 3개월간 피신을 하였고, 18608월 박해가 끝난 후, 밀린 사목방문활동을 재개하였다. 그 후 18616월에 서울에 있는 베르뇌 주교에게 박해상황과 사목 보고를 하러 서울로 상경하던 중, 문경새재와 이화령 고개의 갈림길인 문경시 문경읍 진안리의 오리터 주막촌의 한 주막집에서 깊고 큰 병을 얻어 읍내 창평 이씨(李氏)약국집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과로로 몸이 쇠약한 데다 장티푸스의 합병증으로 마침내 6154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선종하기 8, 9시간 전 그곳에서 170~180리 떨어진 배론 신학교의 푸르티에(pourthie, )신부가 달려와 병자성사를 주었는데, ‘예수, 마리아의 두 이름을 되풀이하며 부르다가 선종하였다고 한다. 푸르티에 신부의 지도로 운구하여 몇 달 뒤에 베르뇌 주교의 집전으로 배론 뒷산에 안장을 했다.

 

마원성지

문경시 문경읍 마원 1리에 있다. 이곳에는 병인박해(1866~1873) 때 문경 출신인 박상근(마티아) 30여 명의 신자들이 충주 상주 대구 등지로 압송되어 순교했다. 박상근(마티아)는 문경에서 아전(하급 관리)이었다. 그는 평소에 숙모 홍 마리아와 친척들은 물론 이웃 사람들에게 열심히 천주교 교리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비신자 어린이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든지 그곳으로 달려가서 대세를 주곤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그와 깔레(N. Calais) 신부의 일화는 실로 눈물겹다. 칼레 신부와의 눈물의 이별 뒤, 박상근 (마티아)은 얼마 후 숙모 홍 마리아와 친척 박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어 상주로 끌려갔다. 그는 다른 교우들과 함께 18671음력 186612로 교수형을 당하였다. 그의 나이는 30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