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5 14:15.
서일농원을 나와 약 25분 후 바우덕이축제가 열리는
강변공원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차량과 인파로 들썩이고 있는 탁트인 강변을 거닐며
눈요기 하기에 바빴다.
여기까지 와서 막걸리 한사발 안하고 배길소냐?
남사당놀이를 관람한 후 17:00에 축제장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은 의외로 순탄하여 서울시청에 닿은 시간이 18:30분으로
예정보다도 1시간이나 앞당겨 도착한 것이다.
아, 유쾌하고도 상쾌했던 가을날의 여정이어라!
(배경음악 : 소금장수-슬기둥)
■ 남사당
남사당은 조선 후기에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줄타기, 인형극, 풍물놀이, 탈놀이 등의 공연을 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연예집단입니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40~50여명으로 구성되었고 단체의 우두머리를 꼭두쇠라고 불렀습니다.
■ 바우덕이(1848-1870)
바우덕이는 5세의 나이에 안성 남사당에서 뛰어난 기량과 스타상을 인정받아 15세의 나이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놀이를 대중문회로 발전시키고 23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고종 2년(1865년)에는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당상관 정3품의 관직에 상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아, 전국 남사당패의 최고로 활동하였습니다.
바우덕이는 남사당의 예술혼을 뜨겁게 불사르다 간 조산을 빛낸 여성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펌글
전국적으로 자생했던 남사당패 중 안성 남사당패가 전국 '최고'로 자리매김한 것은 조선말 '바우덕이(본명:김암덕)'라는 여성 꼭두쇠가 등장하면서부터.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5세 되던 1863년 남사당 최초의 여자꼭두쇠로 안성 남사당을 이끌기 시작했으며 1865년(고종 2년) 남사당패 최초로 정삼품 벼슬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안성 남사당패는 '바우덕이'라는 통칭으로 불렸으며 바우덕이가 전국 공연을 다니면 그 지역 남사당패가 절을 하며 맞아들일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안성 남사당패는 이후 1870년 바우덕이가 22세의 나이로 숨질 때까지 전국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공연을 펼쳤고 바우덕이가 숨진 뒤에도 김복만, 이원보에 이어 현재 김기복(경기도 무형문화재)이 꼭두쇠의 '맥'을 잇고 있다.
'이풍진 세상 즐겁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풍] 아무튼 가을은 만원이다... (0) | 2008.10.13 |
---|---|
[공연] 조용필 40주년 기념콘서트 인천공연... (0) | 2008.10.12 |
[안성여행기-Ⅲ] 드라마 '식객' 속 운암정이 살아있는 서일농원... (0) | 2008.10.07 |
[안성여행기-Ⅱ] 허브마을을 찾아서... (0) | 2008.10.07 |
[안성여행기] 신라천년고찰 칠현산 칠장사... (0) | 2008.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