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을 통해 본 세상...

선조와 문재인 그리고 원균과 윤석열

지요안 2024. 1. 8. 10:52

[난중일기 1597년 5월 8일, 선조가 원균을 아낀 이유]

1. 들어가며

'난중일기'와 이순신 장군 평전을 읽으면  청와대 등 궁궐정치와 실전에 임하는 장수의 갈등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한산대첩)경부터 자기는 도망치면서, 전투 자체보다 수탈 등 다른 일에 몰두했던 원균을 지속적으로 비호하기 일쑤였습니다.

급기야, 정유재란(1597년 1월 14일) 직후인  3월 4일 이순신을 체포하고, 한양으로 압송한 뒤 3월 12일에는 고문하여 사형에 해당되는 형을 내린 뒤 감옥에 가둡니다.

그 직후 선조는 육군이 먼저 지상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접전하여 살육한 다음에, 자기는 도망나오는 일본군을 바다에서 무찌르겠다는 비현실적 작전을 (계속) 주장하는 원균을 통제사로 앉힙니다. 

이순신은 4월 1일 석방되어 권율이 이끄는 육군에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사면된 것은 아니었기에 걸어서 내려가야 했습니다. 

이순신은 내려가는 도중이던 4월 13일 모친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장례를 대충 치른 뒤 5월에야 권율 원수의 헤드쿼터에 도달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한산으로 내려갑니다. 

2. 1596년 5월 8일 일기

"원균은 이경신이 데려온 하인을,  곡식을 사오라는 구실로 육지로 올려보내놓고, 그 아내를 겁탈하려 했으나, 아내가 기를 쓰고 달아나 고래고래 소리쳐서 실패했다고 한다, 원균이란 자는 온갖 계략을 써서 나를 모함하니, 이 또한 내 운명이로다. 

말에 실어 보내는 뇌물이 한양으로 가는 길에 잇닿았으며, 나를 헐뜯는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그저 때를 잘 못 만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3. 선조가 이순신 대신 원균을 등용한 결과

결국, 육군에 의한 선제타격설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선조에게 갖은 뇌물을  바치던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기는 했으나 1596년 7월 14일 출항 후 후퇴한 직후인 15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당하자 배를 버리고 달아나다가 육지에서 살해당하고, 조선 수군 함선은 12척만 남고 모두 격파되거나 침몰되는 손실을 당합니다(명량해전 직전까지 상황).

4. 통찰

가. 선조가  권율에 의한 선제타격설밖에 모르는 원균을 등용한 결과, 조선 수군은 궤멸됐고, 선제타격과 압수수색밖에 모르는 oo들이 국가를 지배하는 결과  경제가 파탄났고, 뇌물이 일상화되며, 요인 암살 미수가 기더기들에게 덮이는 세상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문대통령이 손실보상금 60조원을 자영업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이유, 공권력을 동원해 법관을 사찰한 혐의자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아부한 이유에 대해 2021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론하고 있지만, 이순신이 밉고, 원균이가 좋았던 선조의 심정이 드러난 책들을 보니 알 듯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쓰고 싶으나 약속이 있어서...ㅋ

 

(진혜원 검사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