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을 통해 본 세상...

고놈 참 밀정처럼 얍삽하게 생겼네

지요안 2022. 8. 15. 13:52

<최동 열사 누이 최숙희 님 글>
2022년 8월 12일.

경찰국장 된 김순호는 최동 오빠가 아끼는 후배였습니다.

대학생 때 동숭동 집에도 자주 놀러왔습니다. 
장사하러 나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제가 어린 나이에도 밥을 많이 해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최동 오빠와 함께 심산연구회 활동을 하며, 젊은 시기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독재타도를 외치고 실천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동지였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김순호가 고인이 된 최동 오빠 이름을 올리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김순호가 10여 년을 함께 했던 오빠는 지금은 고인이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왜, 고인이 된 오빠 이름을 거론하며, 비겁하게 숨는지, 자신의 과오를 합리화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빠에게 인간적인 마음의 빚이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빠에게 찾아가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한다구요?
이제 와서~ 누가 이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김순호의 뒤를 봐 준 홍승상은 동대문서에 근무할 때부터 오빠를 감찰했던 사람입니다.
89년 4월, 홍제동 치안본부에 불법연행되어 며칠 만에 면회를 했습니다. 거기에 홍승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너무 놀라고, 기가 막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관계를 무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오빠는 분신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

김순호는 오빠 무덤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최동 오빠와 오빠 49재를 지내고 돌아가신, 최동 아버지를 기억하길 바랍니다.

젊은 시절, 따스한 밥을 해 주던 어머니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최동 오빠가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신경안정제로 살아가고 있는, 오열하는 어머니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최동 #김순호

(류경완 님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