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검찰의 일몰이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 든 건
2020. 하반기 윤석열 총장의 징계 국면에서
검사들의 소란스러운 집단행동을 보았을 때입니다.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2013년 10월 항명 파동으로 징계에 몰렸을 때,
채동욱 총장이 2013년 9월 혼외자 건으로 법무부의 찍어내기 감찰로 사퇴했을 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 서울고검 김모 부장의 구속, 서울동부지검 실무 수습 초임검사의 피의자와의 성관계 사건 등으로 검찰이 수세에 몰렸을 때의 풍경이 떠올라
검사들은 풀과 같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
많이 서글펐거든요.
2012년 그때, 검찰은 연이은 충격타로 술렁였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다. 평검사회의에서 자정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에
회의 소집권자인 서울중앙지검 수석검사에게 찾아가 회의 소집을 건의했는데,
그 선배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수원지검, 광주지검 등지에서 갑자기 연쇄 평검사회의가 열렸고,
‘평검사회의는 대검 지시’라는 황당한 소문이 같이 돌았지요.
설마, 설마... 하던 어느 날 아침
‘서울중앙지검도 평검사회의를 열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먼저 나왔고,
이어, 회의 소집을 거절했던 그 청 수석검사가 각 부 수석검사들에게 ‘점심 때, 도시락 먹으며 회의 소집 여부를 논의하자’는 쪽지를 돌렸습니다.
공판2부 수석검사였던 저는 회의에 참석하여
관제 데모인지 여부를 청 수석검사에게 추궁했지요.
청 수석검사는 대검 연락을 (직접) 받은 바 없다며 관제 데모를 부인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이모, 박모 검사가 대검 연락을 받고 청 수석검사에게 건의했음을 시인했습니다.
회의석상에서 이런저런 우려를 제기하는 검사들이 적지 않아 갑론을박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윤모 검사가 대검 검찰연구관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기자에게 잘못 보내는 바람에
검찰의 검은 속내가 폭로된 후 관제 데모는 중단되었습니다.
채동욱 총장이 2013년 9월 법무부의 찍어내기 감찰로 사퇴할 때,
서울서부지검 검사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평검사회의를 열었습니다.
단발성 회의로 그칠 경우, 서울서부지검 수석검사 등 주동자 여럿이 밟혀 죽겠다... 싶어
창원지검 청 수석이었던 저는 부 수석검사들을 불러 창원지검 평검사회의 개최 여부를 논의했는데,
각 부 수석검사들이 너무 부담스러워해 창원지검 평검사회의는 끝내 열리지 않았고,
다른 청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서울서부지검의 봉화불은 그냥 꺼졌지요.
채동욱 총장의 사퇴와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감찰 사태를 지켜보며,
가만 있기 미안하여 <총장님을 떠나보내며>,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며>를 내부망에 연이어 올렸습니다.
측근으로 알려진 또는 측근을 자처하는 검사들을 포함한 경향 각지의 검사들은 제 글에 댓글조차 거의 달지 않았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현재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댓글 타박도 받았지요.
2020년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때,
검사들의 으싸으싸 집단행동을 지켜보며 생각했지요.
‘총장이어서인가?
아니다. 채동욱 총장 때는 조용했다.
윤석열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윤석열 여주지청장 때는 조용했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가 위법, 부당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박병규 검사의 검사 부적격 퇴출 소동 때 고요했고, 내 무죄구형 중징계 때는 적지 않은 검사들이 오히려 날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렇다면, 우리 검사들은 어떤 때 못본 척하며 묵묵히 일하고, 어떤 때 합심하여 떨치고 일어나는가... 에 대한 서글픈 결론에 이르러,
우리 검찰의 일몰을 확신했지요.
법과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고, 권력의 향배에 대한 눈치만 남아 눈치껏 일어서고 눈치껏 엎드리는 검사는 더 이상 검사가 아니고,
그런 조직은 더 이상 검찰이 아니니까요.
저는 성경책을 읽다가
예레미야 애가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일몰을 예언하는 게 아니잖아요.
동족들에게 비록 욕을 많이 먹지만,
멸망 후 새로이 세워질 이스라엘을 확신하며
동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미래를 대비케 한 것이니까요.
검찰의 일몰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너진 후 바로세워질 검찰의 일출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검찰권을 검찰에 맡긴 주권자들은
주권자로서 부디 지치지 마시고
같이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여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s. 1. 기사 링크는 댓글로 남깁니다.
ps. 2. 오늘 아침 기사 전문 공개된 인터넷 기사 제목을 보니, 그냥 두면 동료들의 돌팔매가 날아들겠다 싶어 제 담벼락에서 부연 설명 드립니다.
형사사건을 ‘10원짜리’ 운운한 자는 제 칼럼에 적힌 것처럼 모든(또는 상당히 많은) 검사들이 아니라 검사회의에서의 모 검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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