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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해서 용감한 윤석열, 성인지 예산의 의미를 아는가?

지요안 2022. 3. 1. 10:10

기자수첩] ‘성인지 예산 30조원으로 북핵 막자’는 윤석열, 덩달아 ‘무지’ 드러낸 공보단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22-02-28 14:39:41
수정 2022-02-28 18:08:33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7일 경북 포항 북구 북포항우체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2.02.27. ⓒ뉴시스


“우리 정부가 성인지 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돈이면 그중 일부만 떼어내도 우리가 이북의 저런 말도 안 되는 핵위협을 안전하게 중층적으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신흥동 북포항우체국 앞에서 진행한 유세 현장에서 한 말이다. 총 558조 원에 달하는 지난해 정부 예산 가운데 무려 30조 원을 ‘성인지 예산’으로 썼다는 말이다.

이를 두고 성인지 예산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거짓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는 오래 전부터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나오던 ‘여성가족부 폐지론’의 주된 근거로 거론되던 것인데,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 이미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윤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여론을 호도한 셈이다.

민중의소리에서 이런 내용의 기사가 나가자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의 항의 전화가 왔다. 분명 성인지 예산으로 잡힌 게 있다며, 윤 후보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이에 기자가 모르는 예산이 따로 있었나 싶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이 보내준 성인지 예산의 근거 자료는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 근거 자료의 출처는 한국일보 기사였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1년도 예산안 성인지 예산서 분석’에 따르면,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된 35조 원은 38개 부처의 성인지 예산을 모두 합산한 금액이었다. 가장 많은 성인지 예산 사업을 신고한 곳은 11조4,000억 원을 신고한 보건복지부, 그 다음은 중소기업벤처부로 9조4,000억 원, 고용노동부 6조6,000억 원, 국토교통부 4조6,000억 원 순이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성인지 예산이) 정부 예산으로 편성된 것처럼 주장했다는 표현이 윤 후보가 예산이 아닌데 예산이라고 오인했다고 읽힐 수 있어서요. (이건) 성인지 예산 편성이 아닌가요?”

민중의소리 기사 중 ‘윤 후보가 마치 성인지 감수성 예산이란 게 정부 예산으로 편성된 것처럼 주장했다’는 문장이 잘못 표현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에게 답변을 해준다면, 애초 기사로 쓴 것처럼 이것을 성인지 예산 편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산을 ‘편성’한 것이 아니라 ‘지목’ 또는 ‘분류’한 것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이겠다.

여가부가 지난해 7월에 낸 팩트체크 자료에 따르면, ‘성인지 예산’은 여성을 위한 예산이 아니라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 대상이 되는 국가의 주요 사업 예산을 의미한다. 즉, 성인지를 위한 사업을 따로 추진하면서 배정한 예산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정부 사업 중 특히 성인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사업을 지목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일종의 제도인 셈이다.

이는 양성평등기본법에 근거한 것이다. 양성평등기본법 제16조(성인지 예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운용에 반영하는 성인지 예산을 실시해야 한다. 

그렇게 성인지 예산으로 지목되어 재분류된 사업들을 다 모은 결과 총 예산 규모가 무려 35조 원에 달한다는 게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이 보내준 ‘근거 자료’의 실제 의미다. 심지어 근거 자료 출처인 한국일보 기사 제목은 〈윤석열, ‘성인지 예산 30조원으로 북핵 막겠다? “가짜뉴스인데...”〉였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은 이 기사에 담긴 그 근거 자료의 의미가 뭔지, 윤 후보처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게다가 그 35조 원엔 국방부 사업 예산까지 포함된다.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이 보내준 근거 자료가 담긴 기사에도 “당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민방위 훈련도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되는데 이것도 없애자는 말이냐’ 등 윤 후보를 질타하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 후보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국방부 사업 예산을 줄여서 북핵을 막자는 말도 될 수 있다. 이것이 윤 후보의 진심인가? 오히려 성인지 예산의 주관 부처로 오해를 받고 있는 여성가족부의 경우 약 8천800억 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성인지 예산은 늘이고 줄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윤 후보는 ‘어디에선 성평등을 실현하고, 어디선 성평등을 실현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래서 윤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지금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성별 갈라치기’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공보단 팀장은 ‘예산 아껴서 북핵 대응에 더 투입하자는 것인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기사에서 왜 나오냐’고 따졌다. 기사에서 윤 후보의 ‘성인지 예산’ 발언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한 대목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럼 왜 굳이 “성인지 감수성 예산”을 콕 집어 말하면서 줄이자고 한 것일까. 윤 후보의 발언은 참모진도 ‘해명 불가’ 아닌가.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는 예산에 대한 윤 후보의 ‘무지’일지도 모르겠다. 윤 후보가 ‘성인지 감수성 예산’이라고 언급한 30조 원이란 규모는 특정 목적을 가진 사업의 단독 예산이 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규모다. 이는 ‘역대급 슈퍼 예산’이라 불리는 올해 정부 총예산 604조 원의 20분의 1가량 되는 수준이며, 전국의 소상공인에게 무조건 300만 원씩 돌리는 데 드는 돈인 11조 원의 3배 가까이 되는 수준이다. 올해 편성된 여가부의 전체 예산만 해도 1조4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쯤되면 ‘성인지 감수성 예산’이라는 게 국회의원들이 밀실에 모여 앉아 ‘쪽지 예산’처럼 늘이고 줄이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를 챘어야 했지만, 윤 후보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정부 예산의 기본도 모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정부 예산에 대한 기초적 이해도 없이 일부 커뮤니티에서나 돌아다니는 잘못된 사실관계와 논리를 여과 없이 차용해 반여성 캠페인에 몰두하는 후보가 과연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며 “윤 후보는 당장 잘못된 사실을 정정하고, 사과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심 후보의 말처럼, 국민의힘은 지금 ‘우리 주장이 맞다’며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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