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을 통해 본 세상...

침묵수행 문재인과 거인 김대중

지요안 2023. 1. 18. 03:39

1.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양산 사저가 있는 평산 마을에 책방을 낸다 한다. 지역 사회에 도움을 줄 방안을 찾다가 택한 일이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체에 걸쳐 윤석열 정권의 반동이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책방도 좋고 지역사회 공헌도 좋다. 전임대통령이 사회적 활동을 하면 안된다는 강변도 아니다.

문제는 시점이다.

직전 대통령으로서 검찰파시즘 정권의 출현에 최소한의 역사적 책임이라도 느끼고 있기는 한가 묻고 싶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침묵 자체로 의미를 담은 의도적 침묵을 하든지, 아니면 크든 작든 현 정부의 파행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든지 해야 할 일이다. 

그럴진대 그의 지금 모습을 보면 "나는 윤석열의 등장과 세상의 퇴행에 아무런 책임도 없어!" 라고 만천하에 선언하는 역사적 무신경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엄동설한의 주말마다 시청 앞 광장에 용산 거리에 켜지는 촛불이 보이지 않는가. 

2.
하도 시국이 험악하니 세상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IMF사태 파국을 극복한 정책역량에서, 미국도 중국도 무시 못한 외교적 위상에서, 수십년을 내다본 경륜에서 최고의 지도자였음이 다시 확인되는 시절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김대중이 가장 존경받을 지점은 퇴임 이후 세상의 터무니없는 퇴행에 대해 그가 보여준 분노와 저항이었다. 

그는 운명하기 두 달 전, 당시 이명박 극우정부의 전횡에 대한 시민들의 비폭력 저항을 호소하며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던 시기, 평생을 싸우고 지켜왔던 민주주의 기초 원칙들이 어이없이 허물어지는 현실을 바라보던 전임대통령의 절절한 비탄이었다.

 “이제 나는 늙었습니다. 힘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민주주의는 싸우는 자, 지키는 자의 것입니다. 싸우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고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려선 안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 하려고 하면 너무 많습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김대중의 일생을 관통한 지도자로서 책임감이자 진실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거인 DJ가 걸어간 길을 온전히 따르기는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 절반이라도 따르는 흉내를 낼 수조차 없는가. 

지켜보는 심장이 욱씬거리는 기분이다.

 

(김동규 교수 페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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