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을 통해 본 세상...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조성식 기자

지요안 2021. 2. 11. 14:17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의 저자 조성식(Sungsik Cho) 기자의 페이스북 글>

명절에 새기는 공자님 말씀

세상에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다. 골프장에서도 자신의 실수에는 벌타 먹이고 동반자 잘못에는 너그러운 사람이 존경받는다. 공자가 일찍이 ‘자기 자신을 책망하기는 엄격히 하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기는 관대히 하라. 그러면 원망을 멀리할 수 있다’(<논어> 15편 위령공)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리라. 시대의 유행어인 ‘내로남불’의 반대로 행동하라는 권언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셀프 면죄부를 발행하면서, 국민에게 공정한 수사를 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까? 수사검사들이 고급술집에서 뇌물성 접대를 받았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는데도 기소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고, 검언유착 시비에 휘말린 총장 최측근 검사가 휴대전화 비번을 꼭꼭 숨겨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무혐의 처리하자고 우기고, 법원에서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판사 사찰 문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뭉개고, 검찰 내부 비리를 조사하려는 감찰부를 외려 수사대상으로 삼고, 국민 분노를 자아낸 별장 성접대 사건을 적당히 덮은 검사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도주 우려가 있는 범죄 혐의자를 출국금지하는 과정에 규정 위반이 있었다고 수사에 착수하고…. 이건 뭐 내로남불의 극치다.

검찰은 스스로 권력이 된 이후 필요에 따라 ‘권력형 비리’니 ‘살아있는 권력 수사’니 하면서 선택적 정의와 공정의 잣대를 들이댔는데, 이런 프레임이 국민에게 먹힌 데는 검찰과 정보권력을 공유한 언론의 공이 크다. 기자들은 종종 사실에 집착하다 진실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나도 그랬다. 프레임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조국 수사 착수 명분인 사모펀드에 관한 조범동/정경심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공모 혐의가 인정되지 않고 권력형 비리가 없었다는 판결이 나왔는데도 사람들이 여전히 펀드와 관련해 심각한 비리가 있었다고 믿고, 가짓수만 많지 한 종류인 입시 관련 혐의가 다 유죄로 인정된 것만 주목한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펀드의 실질적 지배자가 정경심이고, 펀드 투자종목이 정권이 지원하는 유망사업이고, 펀드 조성이 조국의 대선 출마용이라고까지 보도했던 기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도 이러겠지. ‘그래도 수사내용에 충실했던 우리 보도가 큰 틀에서 옳았다는 게 드러났잖아. 유죄잖아, 유죄! 차명으로 주식 투자하고 표창장 위조한 걸 보면 아주 부도덕한 집안이잖아. 비난받아 싸지. 기자가 의혹을 보도하다 보면 뭐 좀 틀릴 수도 있지.’ 그래 맞아. 그래서 언론권력이지.

가장 심하게 일그러진 프레임이 바로 ‘검찰개혁=살아있는 권력 수사 차단’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이 적용될 제도와 규정인데 어찌 그리 이치에 안 맞는 소리를 하는지. 정권과 검찰이 맞설 때 기자들이 대체로 검찰 편을 드는 데는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심리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평소 공식/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일용할 양식’과 같은 사건/수사 관련 정보와 자료를 받고 기사화로 답례하는 데 따른 동업자 의식도 작용한다. 일종의 의리 같은 거다. 검찰 기사와 관련해 더러 언론사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기자는 평소 정보교류를 통해 친해진 검사의 말은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며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감싸주고 옹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른 취재원에 대해서도 비슷하지만, 정보와 힘을 가진 검찰 취재원에 대한 태도가 유난히 그렇다. 그 취재원이 고위직일수록 유착이 심해진다. 이런 점에서 언론사 사주와 서울중앙지검장의 회동은 주목할만하다.

검찰개혁은 비대한 검찰권력을 해체하고 민주주의 작동원리에 맞지 않는 낡은 검찰제도를 바꾸려는 것이다.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는 건 자유지만, 검찰 수사내용을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시대착오적으로 검찰 인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일왕과 전두환을 찬양하고 미화했던 전력 탓인지 몰라도 영웅신화 만들기에 골몰하는 일부 매체를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조국 펀드’로 대표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허위/왜곡 보도와 인권을 침해하다 못해 말살하려 드는 스토킹 보도를 태연하게 일삼는 걸 보면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이 점에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다면서 정작 제도권 언론을 빼놓은 법안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건 아닌지 걱정된다. 뭐 깊은 뜻이 있으리라 믿고 싶지만.

어쩌면 총장 아내와 장모가 연루된 사건을 적당히 눙치려는 기미가 보일 때부터 ‘풍운아’ 윤석열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 검찰’의 공정성은 무너졌는지 모른다. 전 정부에서 ‘국정원 댓글’ 항명 파동을 일으키고, 국정농단 특검에 합류해 재벌권력의 정점인 삼성 총수와 전 정부 고위인사들을 잡아넣고, 이 정부 들어와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구속하며 정권 지지자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았던 ‘윤석열 신화’의 밑동이 흔들린 것이다(한때 그에게 호감을 품고 높게 평가했던 사람으로서 유감이다). 그러잖아도 총장 인사청문회 때 윤우진 사건 위증 논란으로 도덕성에 금이 가지 않았던가.

검사들은 자기네 조직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긴다. 휴대전화 비번을 감추거나 갖다 버리는 소동에서 엿볼 수 있듯 상식을 뛰어넘는 가치관을 가진 검사들이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여기저기 헤집으면서 선택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고역이다. 거기에 일부 판사들이 장단 맞추는 모습까지. 한동안 압수수색이 국민 경계령 1호였는데, 요즘은 법정구속인 것 같다. 사법농단 수사 이후 땅에 떨어진 법원 권위를 세우기 위해선지 몰라도 형평성에 맞지 않은 중형을 선고하고 괘씸죄를 적용해 법정에서 구속해버린다. 머지않아 힘이 많이 빠질 검사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탄핵 위기에 처한 임성근 판사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성명서를 내는 걸 보면 판사들과 검사들은 나란히 붙어 있는 건물 간격만큼이나 정서적으로 가까운 듯싶다. ‘비선출직 엘리트 권력자’들에 대한 이 정권 지지자들의 반감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걸까?

공자는 또 말씀했다. ‘백성을 법과 제도로만 이끌고 형벌로만 다스리면, 백성은 잘못을 해도 벌 받는 것만 피하려고 할 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논어> 2편 위정‘)라고. 법치주의의 맹점을 지적한 탁견이다. 요즘 말로 하면 수사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다. 수사기관이 반칙과 부정에 철퇴를 가해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은 그것대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치를 내세워 수사로 모든 걸 해석하고 평가하고 단죄하려는 건 무모하고 위험하다. 더욱이 그것이 기울어진 법치 또는 ’내로남불 검치‘라면 말이다.

윤석열 검찰의 ’기개‘를 한껏 과시한 울산 사건을 살펴보자. 경찰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울산시장 측근들을 수사한 것이 선거개입이라면, 이명박 정부 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야권 유력후보 한명숙을 수사하고 기소한 데 이어 선거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1심 선고일 전날 별건으로 압수수색을 벌여 이를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한 특수부 검사들은 같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공소시효가 남았나 모르겠지만.

아무리 수사에 필요하더라도 사생활과 일상을 뒤지는 건 최소화해야 한다. 성적표를 들춰보고 일기장을 압수하려 들고 꿈 내용까지 증거로 제시했던 건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수사 명분을 인정한다 쳐도 명백한 검찰권 남용이었다. 과잉수사의 표본이었다. 뭐든지 긁어모아 범죄 가짓수를 늘리려다 보니 빚어진 일이다. 법치주의가 법만능주의로 변질하면 그보다 위험한 게 없다. 그런 위험한 논리에 언론인과 지식인, 또는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부화뇌동하면서 여론을 오도해서야 쓰겠는가? 이건 표창장이나 인턴증명서 허위발급보다 더 중대한 범죄다. 최소 징역 4년에 법정구속이다. 공정하지 않은 수사는 하지 않음만 못하고, 치우친 판결은 비웃음을 살 뿐이다. 관행처럼 여기던 일에 어느 날 갑자기 정색하고 법 잣대를 들이댈 때는 더욱더 공정성과 형평성을 갖춰야 한다.

문서 위조야 그 실체가 있으니 제대로만 심리한다면 객관적인 판결이 가능하겠지만, 표창장이나 인턴증명서(체험활동)가 입시 당락을 갈랐다는 해석은 주관적 판결이다. 그것이 객관적 판결이라는 대접을 받으려면 당시 모든 응시자의 관련 서류를 전수조사해 인턴 근무시간을 따지고 서류심사와 면접에 이르는 제반 평가 및 선발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 여력이 되면 봉사활동 시간을 늘리지 않았는지도 확인해보고. 그런데 이게 교육당국이 아닌 수사기관이나 사법부가 할 일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지금도 고교에서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와 자소서(자기소개서) 작성은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의 ’공모‘로 이뤄진다. 다른 건 몰라도 생기부에 적는 체험활동과 봉사활동에 대해 실제 시간을 문제 삼아 허위라고 주장하면 다들 웃는다. 판사가 입시생 자녀가 없어 이런 현실을 몰랐는지는 모르겠다. 자기 딸의 입시 준비 과정을 잘 아는 교수 친구는 “만약 검찰이 입시생들이 제출한 자소서를 수사하면 학부모와 교사가 줄줄이 공범으로 걸려들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검찰 논리대로라면 이 또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겠다. 누가 누구 업무를 방해한다는 건지 아리송하지만. 뭐 현실이 그렇다고 바람직하지 못한 관행을 방치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보편적 비리‘와 관련해 특정인만 겨냥해 수사하고 재판할 때는 현실과 관행을 고려해 지나치거나 치우쳤다는 비판을 듣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소심한 견해를 밝혔을 뿐이다. 물론 지난번 1심 판결로만 보면 보편적 비리 혐의가 아닌 것도 있지만.

비록 공정성과 형평성과 임의성에 문제가 있지만, 펀드 수사도, 표창장 수사도, 선거개입 수사도, 인턴증명서 수사도, 원전 수사도,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수사도 뭐 할 만한 것이었다고 치자(실제로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는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검사들의 공적/사적 불법 행위와 조직 내부 비리, 검사 출신 정치인이나 변호사 등 범검찰 패밀리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에서 앞에 열거한 사건을 수사할 때의 반만큼이라도 엄격하고 공정한 자세를 보여주면 어떨까? 잃어버린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려면 말이다. 한쪽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제도적 검찰개혁을 부르짖는데, 다른 한쪽은 표창장과 인턴증명서 진위만 따지면서 검찰개혁의 허구성을 외치는 이 소모적인 대립 구도를 해소하려면 말이다.

백 보 양보해도, 조국 수사와 검찰개혁은 별개다. 조국 수사의 본질에 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검찰 내부 단합설을 주목한다. 조국 수사가 벌어지기 전까지, 윤석열 사단은 검찰 내부에 적이 많았다. 보수성향이 강한 검찰 조직에서 친정권 코드수사로 비치는 적폐수사는 환영받지 못했다. 게다가 윤석열의 한풀이 같은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현직검사가 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반발과 비난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총장 취임 후 단행한 첫인사는 끓는 물에 기름을 부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보직과 특수-공안 라인이 윤석열과 호흡을 함께한 특수통 인맥으로 뒤덮인 것이다. 인사 직후 검사 60여 명이 옷을 벗는 등 흉흉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권 실세’를 겨냥한 군사작전과도 같은 대규모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정권과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원망과 반발은 잦아들고 검찰개혁에 맞서 조직을 수호하려는 결의가 가득찼다. 밖에서 적폐수사를 비난하던 범검찰 패밀리들도 일제히 윤석열 지지를 외치기 시작했다.

각설하고,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결을, 드러난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적 신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비난하는 것은 선택적 수사와 보도로 진실을 비트는 검찰권력과 언론권력 못지않게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이쪽을 치면 다 악이고 저쪽을 치면 다 선이라는 공식은 없다. 같은 이치로 정권의 ‘선의’와 무능도 구별해야 한다. 코로나 대응과 더불어 이 정부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 검찰개혁이다. 국가수사본부와 공수처 출범에 이어 중대범죄수사청이 발족하고 검찰이 기소청으로 거듭나면 검찰권력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관련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것이다. 과거 무소불위 권력기관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민간인 사찰까지 서슴지 않던 군정보기관과 국정원이 과도한 힘을 뺀 것처럼, 이는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국민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자세는 정치인, 고위공직자를 비롯해 권력이 큰 사람일수록 모범을 보여야겠지만, 나 같은 소시민도 마땅히 경계하고 삼갈 일이다. 그래야 죄가 아닌 사람을 겨냥한 마녀사냥에 가담해 분별없이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추태를 벌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다들 정도껏 하자. 크든 작든 죄 안 짓고 사는 사람 드물다. 법망이 촘촘할수록 범죄는 늘어난다. 온 국민이 잠재적 범죄자가 되는 사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6일 동안 죄짓고 주일에 교회 가서 기도 한 번으로 용서받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남 죄 욕하는 것으로 자기 죄 덜어내려는 짓, 꺼림칙하지 않은가? 남 죄는 무겁고 파렴치하고, 자기 죄는 가볍고 봐줄 만하다는 생각만큼 뻔뻔한 게 없다. 아, 오해 마시라.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는 예수의 말씀과는 다른 맥락이니까.

군에 간 조카가 첫 휴가를 나온다. 코로나 탓에 늦춰진 휴가란다. 휴가일수를 듣고 믿기지 않았다. 자그마치 14일이란다. 입대 전 무릎을 수술했던 장관 아들이 병가 요청했다가 거부당해 일반휴가 쓴 걸 갖고 불법/특혜라고 생난리를 쳤던 언론은 도대체 뭘 알고 그런 걸까, 모르고 그런 걸까? 아니면, 자주 하던 대로 사실과 상관없이 믿고 싶은 대로 보도한 걸까? 업무 처리 과정에 규정 위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학의 출금 과정의 불법성을 따지겠다며 비장한 각오로 수사하는 것처럼 본질을 가리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 아닌가? 기이한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는 정말 역동적이다. 새해에도 소모적인 갈등과 충돌이 이어지겠지만, 혼란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합리와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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