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와 박찬운...
카이스트 이병태교수 페이스북 글 읽고 지나가다 한양대학교 박찬운교수의 반박 글이 있어 함께 게재합니다.
또한 딴지일보에 엄청난 풍자를 쏟아낸 cocoa란 분의 글을 소개하니 함 읽어 보시고 판단은 각자 해보시기 바랍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페이스북 글
https://www.facebook.com/byungtae.lee.9/posts/10155300133230708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
이 땅에 헬조선이라고 할 때, 이 땅이 살만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욕할 때 한번이라도 당신의 조부모와 부모를 바라보고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기 바랍니다.
초등학교부터 오뉴월 태양 아래 학교 갔다오자 마자 책가방 팽개치고 밭으로 가서 김을 배고 저녁이면 쇠 먹이를 거두려고 강가로 가고 겨울이면 땔감을 마련하려고 산으로 갔던 그런 분들을 처다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라.
초등학교 졸업하는 딸은 남의 집 식모로 보내면서 울었던 당신의 할머니를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라.
대기업이 착취를 한다구요?
한국에 일자리가 없어서 대학을 나오고도 독일의 광산 광부로 갔고 간호사로 갔던 그래서 국제미아가 되었던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의 이야기를 물어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라. 지금도 대학을 나오고도 우리나라에 불법 취업을 와서 노동자로 일하는 필리핀과 몽고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야기 하라.
신혼 초에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지하 방 반칸이라도 마련해 보려고 중동의 때약볕으로 건설 공사장의 인부로 갔던 당신의 삼촌들을 보고 그런 응성을 부려라. 월남전에 가서 생명을 담보로 돈 벌이를 갔던 당신의 앞 세대를 생각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라.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지 않나? 앞세대의 성취와 피땀을 그렇게 부정하고 폄하하고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나?
사람들은 내가 미국가서 박사하고 KAIST교수하고 반기업 정서에 대응하니까 무척 금수저인줄 아는 가 보다.
나는 위에 적은 일들을 직접 경험했고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신들처럼 그런 배부른 소리를 못할 뿐이다. 나는 부모 모두 무학의 농부의 아들이고, 그 것도 땅 한평 없던 소작농의 아들로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등잔과 호롱불로 공부했다. 나보다 더 영특했을 우리 누이는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으로 취업해 갔고 지금까지도 우리 어머님의 지워지지 않는 한이다. 나는대학 내내 입주 아르바이트로 내 생활비를 마련하면 다녔고 때로는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면 다녔다. 나는 돈 한푼도 없이 결혼했고 집없는 설움을 겪으며 신혼 초에 치솟는 전세값 때문에 서울을 전전하며 살았다. 단돈 3백만원으로 가족을 데리고 유학을 가서 배추 살 돈이 없어서 김치를 만들어 먹지 못했고 내 아내는 남의 애들을 봐주고 우리 딸은 흑인애들이 받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서 우유와 오렌지 쥬스를 사 먹이면 학교를 다녔다.
나는 회사에 취업해서 주 6일을 근무하던 때에 입사 첫해에 크리스마스 날 단 하루 쉬어 보았다. 공장 창고의 재고를 맞추려고 퇴근 안하고 팬티만 입고 냉방도 안되는 높다란 창고 위를 기어 올라 부품을 세면서 생산을 정상화하려 애썼다. 그렇게 야근하는 날은 세상에서 제일 맛 있는 음식은 삼겹살인줄 알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 왔기에, 무책임한 노조가 망가뜨리는 회사를 보와왔기에, 우리보다 잘사는 것으로 알았던 많은 나라들이 꼬꾸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어떻게 잘 사는 사회인지 보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처럼 아프다고 못하고 힐링해야 한다고 응석을 부리지 못한다.
제발 당신의 고결한 조부모와 부모들을 더 이상 능멸하지 말라.
당신들이 우습게 하는 대한민국 기업들 가발공장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부터 시작해서 배워서 지금까지 일군 것이다. 정부의 벤처 지원책도, 금융도 없었고, 대학도 없었고, 컨설팅 없이 자유수출공단에 진출한 일본인들에게 술사주고 기생접대하면서 배우고 일군 것들이다. 당신의 이모 고모가 그렇게 술 따르면 번돈으로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제발 응석부리고 빈정거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 우리 사회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뜰하게 공부하고 나서 비난해도 늦지 않다.
사람 값이 싸다고 투덜 대기 전에 누구 한번 월급 줘보고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하고, 월급 보다 더 가치있는 직원이라고 증명해라. 그런 직원 찾으려고 기업주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나는 당신들의 그 빈정거림과 무지에 화가 난다.
그러니 나보다 더 고생하고 생존자체를 위해 발버둥처야만 했던 나의 앞세대, 내 부모님 세대는 오죽하겠나? 당신들이 아프다고 할 때, 나는 그 유약하고 철없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
당신들이 누리는 그 모든 것들, 스타벅스 커피, 스타크래프트 게임, 해외 배낭여행, 그 어떤 것들도 당신들이 이룬 것은 없다. 당신들은 지금 이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것으로 지금 누리는 것에 보답해야 한다. 우리세대는 누리지 못했기에 당신들이 누리는 것을 보는 것으로 행복할 따름이고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당신들에게 조롱받을 아무런 이유는 없다. 당신의 앞세대는 그저 물려 받은 것 보다 몇십 몇백배로 일구어 넘겨준 죄 뿐이고 당신들에게 인생은 원래 고달픈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것 뿐이다. 사기꾼들이 이 나라 밖에는 어디 천국이 있는 것처럼 거짓을 전파할 때 설마 저런 소리에 속을까하며 미리 막지 못한 죄 뿐이다.
당신의 부모들이 침묵하는 것은 어이가 없거나, 말해도 못 알아 듣거나, 남보다 더 해주고 싶다는 한 없는 자식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지 당신들의 응석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속으로 울화통이 터지거니 울고 계실 것이다. 나는 그렇다.
P.S.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 원칙인데 제가 우리사회가 사람을 똥값 취급한다는 댓글을 보며 참지 못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죄송.
https://www.facebook.com/chan.park.1238/posts/1637380686285705
5천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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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읽은 글 하나가 내 평정심을 깨트렸다. 어느 유명대학 교수란 분이 젊은이들에 대해 쓴 글인데 SNS상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내가 아주 짧게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너희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욕한다지?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줄 너희들이 아니? 너희 선배들이 피땀 흘려 만든 곳이야. 너희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 이 철없는 것들아, 제발 징징대지 마라.‘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옳소!“를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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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분과 그 글에 박수를 치는 분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짧지만 명징하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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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70년대 후반 학번으로 나와 비슷한 연배다. 그는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았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미국 유학을 해 박사가 되었고, 드디어 국내 유수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분과 나를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한다면 내가 크게 꿀릴 것은 없다. 가정형편 어려운 것은 내가 심하면 심했지 이분이 더하진 않았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시절 고시공부를 했으니 동시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노력을 인정할 것이다. 나 또한 외국물을 먹었고 학위를 땄고 마침내 대학교수가 되었으니 그것도 유사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생각은 전혀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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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분 자신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 중 상당수(이 땅에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는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 학번으로 이야기하면 70년대 학번과 80년대 초반 학번을 대체로 베이비부머 세대라 부른다. 이들은 어린 시절 대부분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면서 공부했다. 그래서 이름께나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소싯적 애절한 이야기는 하나씩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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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성장의 대가를 톡톡히 받고 산 사람들이다. 경제성장이 매년 10% 가까운 고도성장기에 대학을 다니지 않았는가. 이 시절 제대로 된 대학 나와 직장을 갖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나만 해도 요즘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마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이야 교사가 각광을 받지만 내 시대엔 그렇지 않았다. 누구나 공부를 하면 금수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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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학번은 이미 은퇴를 했거나 조만간 본격적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다른 세대와 뭔가 다르다. 주변을 돌아보라. 70년대 초 중반 대학을 다닌 분들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들 중 상당 수는 은퇴 후에도 큰 걱정이 없다. 강남의 집은 이미 십 수 억으로 불어났고 연금은 혼자 쓰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세대는 과거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다. 생애 초반 20년 고생하고 그 이후 60년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세대니 젊은 시절 고생담은 그저 추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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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의 젊은 세대를 보자. 이들은 물론 유복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부모세대가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기에 받는 반사이익일 뿐 삶은 온통 불투명하고 우울하다. 도통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이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외국 유학을 갔다 와도, 영어를 완벽하게 해도, 부모세대가
누린 기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부모세대는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도, 영어를 못해도 신의 직장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어림 반푼도 없는 말이다. 잘난 부모 밑에서 하루하루 눈치 보며 사는 데도 이제 지쳤다. 그 마음을 5천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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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멋모를 때는 학생들에게 자랑스럽게 옛날이야기를 했다. 가난했던 내 삶을 말하면서 희망을 갖고, 용기를 갖고, 공부하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말하지 않는다. 가급적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미래를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도 자식들로부터 밥상머리에서 항상 비난을 듣는다. 왜 자신들의 처지를 그리도 모르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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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 세대는 이 나라의 중심이 되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의 말에 귀 기울려야 할 이도 우리 세대일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았고 아이들 제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한 죄밖엔 없는데 왜 자식들은 그것을 몰라주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 성장을 제1의 가치로 여기면서 불철주야 일한 게 오히려 독이 된 것은 아닌지, 미래세대의 몫까지 우리세대가 다 앞서서 빼앗아 먹은 것은 아닌지, 경쟁의 가치를 과신한 나머지 사회를 온통 운동경기장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성찰하고 또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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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자신이 행복세대이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후세대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세대의 자세가 아니다. 만일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마땅히 해줄게 없다면 가만히 입이나 다물고 있는 게 예의다. 더욱 그들에게 징징댄다고 타박하는 것은 오만 중의 오만이다. 그분은 달리 생각하겠지만...나는 그리 생각한다.
◆딴지일보 게재 글
http://www.ddanzi.com/ddanziNews/192971263
2017.07.20 15:39 cocoa
[명문비평]카이스트 이병태 교수를 건들면 누구든 아주 ㅈ되는 거야
오늘의 주인공인 이병태 교수께서 "젊은 세대들의 빈정거림과 무지에 화가 난다" 하셨으니, 개념도 지식도 없는 나는 음슴체로 하겠음.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 류의 꼰대글을 읽을 때면, 명치를 존나 쎄게 맞으면 저런 소리 못 할 텐데.. 하고 불경한 생각을 하곤 했음. 불경한 소리라 하는 이유는 이병태 교수의 글을 읽고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임.
이 명문을 어느 중년 교수의 인정투쟁 정도로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임. 만약 그런 글이었음 짠한 마음에 페북 알계정 몇 개 만들어서 좋아요 눌러주고 끝났을 것임. 글 전반에 흐르는 오만한 자신감을 보셈. 이런 건 자기 삶의 단 한 순간, 1분 1초도 부끄럽지 않아야 가능한 것임.
이병태 교수는 그런 사람임. 함부로 꼰대라고 욕하지 마셈. 누구 한 번 뜨겁게 가르쳐 본적 있음? 그는 인생을 발톱 때만큼도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 산업화 시대를 알려주고 회초리 쳐서 계몽시키고자 하는 참 교육자임. 괜히 교수가 아님.
'이 땅에 헬조선이라고 할 때, 이 땅이 살만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욕할 때 한번이라도 당신의 조부모와 부모를 바라보고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기 바랍니다.'
1)지금 헬조선과 2)옛날에 힘들었다는 별개의 논의를 뒤섞고 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님. 왜냐면 우리 교수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 이기 때문임.
방점은 ‘내가'임.
사람들은 내가 미국가서 박사하고 KAIST교수하고 반기업 정서에 대응하니까 무척 금수저인줄 아는 가 보다.
나는 위에 적은 일들을 직접 경험했고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신들처럼 그런 배부른 소리를 못할 뿐이다.
그래서 여기서 부터가 본론의 시작이라고 보면 됨. 갑자기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뀐 것 같지만 그런 배려 따위는 음슴. 새파랗게 젊은 놈들한테 인생의 고귀한 경험을 나눠주시는데 반말 존댓말을 따질 타이밍임? 여기서 읽어야 할 메시지는 ‘미국 박사', ‘카이스트 교수' 임.
나는 부모 모두 무학의 농부의 아들이고, 그 것도 땅 한평 없던 소작농의 아들로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등잔과 호롱불로 공부했다.
중학교때부터 LED 스텐드에서 공부했지만 카이스트는 근처도 못 가본 나는 호롱불이 레알 지리는 포인트라 느꼈음. 님들 호롱불 본 적 있음?
이렇게 생김. 태조 왕건에서 본 거 같은데 이걸로 중학교 때까지 공부했다 하심. 호롱불 미만 잡.
우리 아빠도 어렸을 적엔 반딧불이 모아서 책 읽었다고 했는데, 아빠는 카이스트 못 갔으니 무효임. 카이스트 미만 잡. 일단 토 달 생각하지 말고 교수님 말씀을 경청해 보셈.
나는 돈 한푼도 없이 결혼했고 집없는 설움을 겪으며 신혼 초에 치솟는 전세값 때문에 서울을 전전하며 살았다.
나는 회사에 취업해서 주 6일을 근무하던 때에 입사 첫해에 크리스마스 날 단 하루 쉬어 보았다. 공장 창고의 재고를 맞추려고 퇴근 안하고 팬티만 입고 냉방도 안되는 높다란 창고 위를 기어 올라 부품을 세면서 생산을 정상화하려 애썼다.
한 번이라도 가난배틀을 해본 사람은 알 거임. 처음에는, 나 용돈 30만 원이야. 졸라 적어. 응? 나는 25만 원인데 그게 뭐가 적냐, 로 시작해서, 나는 자취하잖아 임마, 나는 토익 학원비 내가 내잖아, 우리 아빠는 주식했어, 우리 작은 할아버지는 노름으로 선산 날려 먹었어, 하는 비통한 집안 역사가 나오고 나서야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을.
이 교수님 역시 마찬가지임. 너네는 그 산업화 시대를 안 살아봤으니 고생은 ㅈ도 모른다고 주장하려다 보니, 과거에 겪었던 고생, 고생, 개고생을 다 끌어오게 되었음. 결국 혼자만 간직하고 싶었던 팬티 바람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임. 살신성인 오지는 각 ㅇㅈ?
그렇게 살아 왔기에, 무책임한 노조가 망가뜨리는 회사를 보와왔기에, 우리보다 잘사는 것으로 알았던 많은 나라들이 꼬꾸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어떻게 잘 사는 사회인지 보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처럼 아프다고 못하고 힐링해야 한다고 응석을 부리지 못한다.
키야. '왔기에, 보아왔기에, 때문에, 때문에'로 감정 점층시키는 거 봤음? 이런 게 명문임.
아아, 어이쿠. 감동에 부르르 떨다가 이상한 사진이 올라가 버렸음 ;;
위 말씀의 포인트는 '이런 나도 감히 응석 부리지 못하는데 너네가!'임. 작년에 태극기 집회에서 많이 들었던 내 청춘을 다 바쳐서 만든 나라인데 빨갱이가!! 랑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됨. 우리 교수님 애국자!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내 나는 이렇게 빡세게 살았다! 만 나왔지, 청년 세대의 어려움은 언급한 게 없음. 지금 청년 세대가 단군이래 최초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 유치원에 입학할 때부터 상대적 박탈감에 허덕이는 세대, 부동산 무임승차를 할 수 없는 세대
라는 사실은 중요치 않음. 9급 공무원 경쟁률이 얼만지 앎? 이런 질문도 무쓸모임. 3천만 원 학자금 빚지고 취업 안 되도 겨울엔 따숩고 여름엔 시원한 도서관에서 LED 조명아래 공부했으면 호롱불 앞에서 아닥하는 게 진리임.
물론 교수님이 그때가 힘든지 지금이 힘든지 모두 경험해 본 것은 아님. 그냥 카이스트 교수님일 뿐이지, 맨 프럼 어스가 아님. 어떤 것이 더 빡센 것인지 알 수 없음에도 이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우리 교수님의 스웨거.
제발 응석부리고 빈정거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 우리 사회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뜰하게 공부하고 나서 비난해도 늦지 않다.
사람 값이 싸다고 투덜 대기 전에 누구 한번 월급 줘보고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하고, 월급 보다 더 가치있는 직원이라고 증명해라. 그런 직원 찾으려고 기업주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나는 당신들의 그 빈정거림과 무지에 화가 난다. 그러니 나보다 더 고생하고 생존자체를 위해 발버둥처야만 했던 나의 앞세대, 내 부모님 세대는 오죽하겠나? 당신들이 아프다고 할 때, 나는 그 유약하고 철없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
인용이 좀 길었음. 우리 교수님의 분노가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으니 양해 부탁함. 중요한 건 우리 교수님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셨다는 것임. 작은 하마도 건들면 ㅈ되는데, 교수님이 화나시면 어떠겠음? 우리 다 ㅈ되는 거임.
혹시 지금 "옛날에 똥 같은 세상이었으면 지금도 똥 같아야 하나요?" 같은 질문을 생각했다면 넣어두는 게 좋음. 어설프게 그런 질문 했다간 아주 ㅈ되는 수가 있음. 다시 말하지면 교수님을 어설프게 인정투쟁이나 벌이는 꼰대라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면 오산리임. 호롱불로 공부해서 카이스트 교수가 된 전지적 호롱불시점에서 볼 때, 너네들 불만은 철없는 투정에 응석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임.
요즘 사드 때문에 중국이 어쩌고 미국이 어쩌고 외교안보가 어쩌고 하는데, 우리 교수님 관점에서는 다 유약하고 철없는 소리임. 제대로 외세 위협 받아봤음? 운요호 실제로 봤음? 강화도 조약 앎? 그런 것도 안 겪어봤으면서 외교가 힘드네 어쩌네 응석부리면 안됨 ㅇㅇ
우리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트럼프도 별 거 없음. 한미 FTA 재협상? 한국이 오픈 안 한다고 미국이 욕하면 훈계 해주면 됨. 너네 흥선대원군 알아? 흥선대원군도 안 겪어봤으면서 FTA를 논해? 자동차 팔아주는 것도 감사하게 여겨.. 이거 뜨라.
당신들이 누리는 그 모든 것들, 스타벅스 커피, 스타크래프트 게임, 해외 배낭여행, 그 어떤 것들도 당신들이 이룬 것은 없다.
이런 상상도 해봤음. 쇼미더머니에 홍서범 선생이 나오셔서 원조 부심을 부리는 것임. “니네가 누리는 붐뱁이든 트랩이든 내가 김삿갓~ 김삿갓~ 안 했으면 없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장면임. 악마의 편집으로 악명 높은 엠넷도 지려서 무편집으로 내보낼 것임.
스타벅스 커피 마신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고 해외여행으로 욕하는 게 언제적이냐.. 싶겠지만 꺼진 불도 다시보라 했음. 우리 교수님께선 이미 사회적 논쟁이 끝나 생활이 된 이슈도 거침없이 다루심.
요지는 간단함. 착각하지 말라는 거임.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입는 것 어느 것 하나 니가 한 게 아니니 희희낙락하지 말라는 거임. 스타크래프트 하면서 계산기 만든 사람한테 감사해본 사람 있음? 우리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임. 사회적으로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요소 요소는 물론, 문명 사회를 이룩하게 만든 조상님들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함. 개인적으로는 미토콘드리아의 활기찬 꼬리짓부터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임.
사기꾼들이 이 나라 밖에는 어디 천국이 있는 것처럼 거짓을 전파할 때 설마 저런 소리에 속을까하며 미리 막지 못한 죄 뿐이다.
이런 통계를 만든 OECD라는 사기꾼 단체는 이제 빼박임. march 한국이 헬조선인 것처럼 우리를 속여왔기 때문임. 기왕 교수님께서 OECD를 저격한 김에, 우리 철없는 얼라들을 대신해 직접 사기꾼 단체인 OECD를 고발해 줬으면 좋겠음.
나는 이 명문이 페북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이런 글이야말로 널리 널리 퍼져서 홍익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봄.
예컨대 이런 것임. 광화문 사거리에서 교수님이 이 명문을 낭독함. 모두가 교수님 성함을 알 수 있도록 커다란 명함을 붙여드리고, 멀리서도 이 행사를 알 수 있도록 커다란 현수막도 달고 하는 것임. 분명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될 것이라 생각함.
아;; 이 사진이 아닌데;;
그..그래 이거임.
기미독립 선언처럼
헬조선이라는 패배주의적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를 개안시킨 감동적인 장면이 탄생하지 않겠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내가 책임지고 철없는 급식이들 10명을 모아서 참석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