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풍진 세상 즐겁게...

눈 덮인 땅에도 봄은 오는가?

지요안 2010. 3. 13. 08:50

 

좌우간 징글징글했다.

지난겨울은 춥기도 하였으려니와 폭탄이라 불릴 만큼 잦고 많았던 탓으로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징글징글했던 폭설이었다.

그냥 가기가 섭섭하기라도 했던 걸까?

봄이 오려는 순간에 또 다시 징그런 폭설이 내렸으니 뭇 사람들의 시선이 곱겠는가?

3월에 내리는 춘설은 농사에도 도움을 줄 뿐더러 보통 반기는 게 우리네 심정일 텐데

지난 9일과 10일 사이에 쏟아진 눈은 모든 이로부터 푸대접을 받기에 마땅했다.

아직도 싸늘한 공기가 봄을 느끼기에는 부족한듯하지만

춘분이 일주일 코 앞에 있으니 눈으로 온통 몸살을 앓고 있던 이 땅에도 분명히 봄은 오리라.

그래서인가?

동토(凍土)의 조국을 노래했던 이상화시인의 시가 갑자기 생각나는 토요일 아침이다.

 

눈이내리는데, 유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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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李相和-1901∼1943)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 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개벽>(1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