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곳에...

오늘같은날, 모던포크의 마지막 불꽃 양병집...

지요안 2009. 4. 14. 18:40

엊그제 강화 고려산엘 가보니 도무지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싹 말랐더이다.

어디 대지만 말랐겄소? 나뭇가지를 꺾어보니 그냥 톡톡 소릴내며 하염없이 꺾어집디다.

어디 그뿐이겄소? 가여운 저 농민들의 가심(슴)도 그저 바짝 바짝 타들어갈 수 밖에...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이럴 땐 그저 모른 척하구 한줄기 쏟아주시면 어디가 덧나나?

하찮은 중생이 할 수 있는 짓거리라곤 그저 이런 넋두리나  내던질 수 밖에...

에구, 속터진다! 하느님, 제발 비 좀 내려주소!

 

(아래는 2007.12.25일자 파란블로그, 조마하우스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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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서유석이나 이연실의 곡으로 잘 알려진 타복(박)의 가수 양병집.

(*본 블로그 2007.3.30일자 소개 - 타복 타복 타복네)

한대수, 김민기와 함께 '한국의 3대 저항가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양병집

그의 첫 음반인 ‘넋두리’를 통해 1970년대의 암울했던 유신시대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거친 말과 그 특유의 쓴 목소리로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노래들은

당시 갖가지 억눌림과 제약을 받고 있던 젊은이들의 메시지를 담고

그들의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용을 한다.

 젊은이들에게 그럴싸한 해방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반 ‘넋두리’는 1974년도에 1500장 정도가 발매,

800여장 팔리고 나머지는 모두 회수되고 만다.

 

한편, 상업적으로 실패를 거듭하던 양병집

전인권, 정태춘을 세상에 알린 공로자로도 전해진다.

탁월한 그의 눈을 통해서 유능한 두 사람의 음악활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성 강한 노래, 싸구려 식 사랑타령보다

심성을 맑게 해줄 수 있는 노래작업만을 계속할 생각>>이라며

늘 앞서가는 감각으로 대중 속에 파고들기를 일관되게 시도한 양병집.

 

아래 가요칼럼니스트 최규성씨의 일침이 따끔하다.

 

<<그의 넋두리는 상업적 음악만을 양산하는 가요계에

밀알과 같은 진정한 자양분이었음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성탄절에 이 노래가 어울리지는 모르겠으나 <오늘같은날>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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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

 

오늘 같은 날 비나 오구려

때 묻은 내 몸뚱이를 씻어주시게

비나 오구려 오늘 같은 날

지저분한 저 길거리를 씻어주시게

굴러가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하늘에다 던져 봐도 받지를 않네

오늘 같은 날 에라 집에나 가지

오늘만은 집 냄새도 향기롭다네

 

오늘 같은 날 보고 싶구려

예쁘장한 얼굴이나 보여주시게

보고 싶구려 오늘 같은 날

어리석은 그 위로라도 들려주시게

십원짜리 깨끗이 깨끗이 닦아

당신에게 전화해도 받지를 않네

오늘 같은 날 에라 집에나 가지

오늘만은 집 냄새도 향기롭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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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글 ; 어두운 시대 참인간 찾아 나선 한국 모던포크의 마지막 불꽃

 

- 양병집은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과 함께 초창기 한국 모던 포크의 4인방으로 꼽히는 인물이지만 이 음악 언어가 요구하는 세계관의 독자적인 형상화 역량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탓에 마땅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60년대말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이 주로 밥 딜런이나 우디 거스리 같은 서구 모던포크 거장들의 음악을 번안하거나 우리의 전통적인 구전음악을 되살리는 데 치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물론 이 작업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디 거스리의 노래를 번안한 〈서울 하늘〉이나 최근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역(逆)〉은 우리의 현실이 스며든 최고의 번안으로 꼽힐 만하다. 그리고 그가 채보한 〈타복네〉나 광복군의 노래 〈엄마 엄마 아 엄마〉의 ’다시 부르기’는 민중들의 옛 유산에서 오늘의 의미를 읽어내는 모던 포크 고유의 강령을 충실하게 수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는 단지 그것만으로 자신의 이력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대학가의 전투적인 저항가들도 웅장한 키보드 사운드를 채택하기 시작하면서 70년대의 통기타 소리를 무장해제시키고 있던 80년대 중반에 양병집은 사라져 가는 모던 포크의 마지막 불꽃을 묵묵히 태운다. 별 반응 없이 끝났던 1980년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의 흥행은 참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집의 속살은, 전작은 물론이고 어떤 한국 모던 포크의 걸작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놀라운 통찰력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의 제2차 혁명의 포문이 불당겨지던 1985년의 숨은 보석이다.

 

- 포크 록의 전형적인 담담함으로 앨범은 문을 연다. 〈오늘 같은 날〉은 ‘비나 왔으면’ 좋을 답답한 일상에서 ‘어리석은 위로’라도 받기 위해 ‘십원짜리 동전을 깨끗이 닦아’ 전화하지만 ‘결국’ 집으로밖에 갈 수 없는, 도시의 중심에서 떠밀린 자신을 소개한다.

 

- 그러나 이 누추한 자아는 그저 누추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이어지는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와 〈우리의 김씨〉를 보라. 본래 제목이 〈구인광고〉인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는 정태춘의 곡으로, 양병집 특유의 걸쭉하고 텁텁한 목청을 통해 이 어두운 세상을 소리 없이 밝히는 진정한 인간을 찾아 나서며 이에 대한 응답이 바로 ‘도매상이 모여 있는 시장길에서 물건을 싣고 있는 우리의 김씨’인 것이다. ‘옷차림은 남루하고 키는 작지만’, 그리고 ‘내년에는 큰 딸아이 시집 보내고 마누라의 속치마도 사다 줘야’하는 그의 김씨는 바로 어두운 시대를 끝까지 살아남는 자신의 초상인 것이다.

 

- 비록 자작곡 가수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앨범은 양병집이 단순히 서구 자유주의 문화의 ‘전달자’로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그 문법을 기반으로 한국의,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소리를 창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시대가 끝난 뒤에야 자신의 소리를 찾은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