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바보들의행진'OST), 송창식...
영화 <바보들의행진>은 70년대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서 신음하는
젊은이들의 비애와 상실감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 삽입된 <고래사냥. 왜불러, 날이갈수록>은
모두 송창식의 노래로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을이면 한층 맛을 더해주는 <날이갈수록>을 감상해봅시다.
날이 갈수록
(작사.작곡 김상배)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 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하늘엔 조각 구름 무정한 세월이여
꽃잎이 떨어지니 젊음도 곧 가겠지
머물 수 없는 시절 우리들의 시절
루루루루 세월이 가네 루루루루 젊음도 가네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 펌글
감각적이고 음률적인 문장으로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춘 군상의 내-외면적 풍속을 그려 청년 독서층의 지지를 받았던 최인호 소설을 미국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그의 세번째 작품.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최인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기존의 제작 체계와의 갈등 속에서 결국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비판적인 작가 의지를 불태운 하길종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젊은 층을 자극한다고 해서 영화 속의 대학교의 휴교 장면이나 직설적인 대사는 모조리 수정해야 했다.
원작 자체가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여 대학 생활을 담고 있지만, 이 단편적인 얘기들을 리드미컬하게 이끌어 나가면서 극적 분위기를 고양시켰다는 점은 확실히 연출자의 재능이다. 현실 고발적인 작가 정신이 군데군데 번뜩이고 있으며, 차분하고 치밀하게 엮어나갔다. 젊은이의 꿈과 현실의 간격이 빚는 고통을 애상적이고 시적으로 잘 묘사한 청춘물.
장발 단속을 하는 경관이 더 장발인 모순된 사회, "근무 중 이상있습니다"하며 바쁜 상황에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 하는 경직된 체제, 70년대 초반의 우리 사회상이었다. 경찰 역을 한 배우는 지금은 작고한 코미디언 이기동 씨였는데, 병태와 영철이 도망할 때 흐르는 곡이 송창식의 "왜 불러"이다. 항의하는 듯한 반말 투의 가사와 절규하는 듯한 곡조가 영화와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노래는 얼마 후에 '외색'이라는 이상한 이유로 금지 가요가 되었다.
연이은 긴급 조치로 수업 보다는 휴강이 많았던 그 시절, "동해엔 고래 한 마리가 있어요, 예쁜 고래 한 마리, 그걸 잡으러 떠날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70년대에 만연했던 패배주의와 무력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의 바보들은 고래사냥을 목 놓아 불렀고, 병태와 영자의 키스를 거들어주던 헌병이 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은 역시 암담한 시절일수록 사랑은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