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성묘길에서 장면 박사를 만나다...
9/22 토요일,
이른 아침 아내와 함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계신 곳 포천으로 성묘하러 갔다.
좌우간, 요즘은 갖다 부치기도 참 잘한다.
초입에 예전부터 있었던 돌로 된 표지엔 '천주교혜화동교회묘'로 되어 있지만,
관리사무소 앞의 표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혜화성당 추모관리사무소'관리사무소를 지나 묘지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밤을 줍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각설하고,아직은 이른 시간인지라 우리 부부 외에 딱 한 팀이 셩묘를 하고 있었다.
묘지엔 왜 그리도 잡나무가 기승을 부리는가?
일부러 심어도 신통찮은 나무들이 묘지에선 가꾸지 않아도 잘도 자란다
.매번 뽑아내도 줄기차게 뿌리를 내리려는 잡나무를 뽑아내는 데에 한 참을 허비했다.
주위에 불규칙하게 뻗어있는 나뭇가지를 쳐내느라
작년에 새로 장만했던 성능 좋은 낫이 이리 저리 휘둘려졌음은 물론이다.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아내 마리아의 제안으로
바로 우측 부근에 있는 운석(雲石) 장면(張勉) 박사의 묘소를 찾았다.
30여 년 오가면서 가까이서 눈으로만 바라보던 장박사님 묘소를 처음으로 찾은 것이다.
장면 박사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에 돌아가셨는데 혜화동천주교회에서 장례미사를 드리고
시가행진을 했던 장례식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역사는 승리자의 몫이라지만 박정희 군부쿠데타 세력에 의하여
무능한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혔던 그분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분분하다.
재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늘 차분했던 노신사의 모습이
당시 어렸던 나에겐 참으로 존경스럽게 느껴졌었다.
좌우간, 진입로부터 심상 찮은 장박사의 묘는 예전 왕릉을 연상케 할 정도로 드넓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묘소엔 교요한 적막함이 감돌았으나 아내와 나는 그 분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키가 크고 작은 언밸런스의 개 한 쌍이 활보를 하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불경(?)스럽게도 묘지의 잘 다듬어진 나무에 영역표시를 한 숫놈이
잽사게 암놈을 뒤따라 뛰어갔다.
오늘 새삼 권력의 무상함을 느낀다.
■ 배경음악은 '박재홍' 선생의 <물방아도는내력>입니다.
<초라한 왕능?>
<장면박사 묘소 입구>
<잘 정돈된 진입로>
<하늘이 안보인다>
<여기 놀러 왔네?>
<진입로에 떨어진 떡 벌어진 밤송이>
<그렇지, 경건한 마음으로...>
<너 독버섯이지?>
<중간에 있는 십자석-묘소를 바라보며...>
<중간에 있는 십자석-입구를 바라보며...>
<묘소 밑 계단>
<묘소 밑 좌측에 있는 비석>
<묘소 밑 우측에 있는 공터>
<묘소에서 내려다 본 입구쪽>
<이 정도면 왕릉에 버금가려나?>
<잘 가꾸어진 묘소 전경>
<우측에서의 컷>
<정면에서의 컷>
<묘소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
<묘소 밑 반월형 계단에서 쉬는 마리아>
<묘소 진입로 잔디에 핀 버섯>
<먹이를 낚은 왕거미>
<각도를 달리해서...>
<요것도 독버섯>
<쭉 뻗은 진입로>
<야생화를 든 여인>
<진입로>
<동막골 그 처녀처럼...>
<퍼져있는 독버섯>
<강한 생명력의 야생화>
<참 대견하군>
<자, 그만 갑시다>
<묘지가 아닌 추모공원 관리소 표지>
<추모공원 관리소>
<추모공원 입구>
<아래동네의 탐스런 밤송이>
<저 나무 밑엔 실한 밤톨들이 수두룩할 걸?>
<혜화동묘지, 장면박사 가(家) 묘 입구 안내 표석>
<차도 쪽 방향에서의 컷...>